타인의 고통 ㅣ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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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죽었다. 다같이 기뻐하지는 말자

약 십 년 전 9월 11일, 알 카에다는 뉴욕 트윈 타워를 주저앉혔다. 시간과 이미지, 거기에 부여된 상징성을 정확히 계산한 뒤 타격을 가했다. 전 세계의 신문과 언론은 붉은 피 없이 불길에 휩싸인 건물 두 개의 이미지로 도배된다. 부시 행정부는 즉각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수전 손택은 그녀의 마지막 저서 <타인의 고통>을 출간한다. 한국어 판 부록에서는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라며 9. 11테러가 발생한 뒤 십 여일 지난 시점에서 쓴 기고문을 읽을 수 있다. 그녀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예외적으로 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이다.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언제 끝날 지 모르던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원흉으로 지목되던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 약 십년이 흐른 뒤다. 눈 부위에 총상을 입은 빈 라덴 이미지가 돌아다닌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몇 년 전 조작된 사진이었다. 카메라는 이제 성조기를 흔들며 기뻐하는 미국 시민을 피사체에 담고 언론은 회의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작전 생중계를 바라보는 오바마의 사진에 관해 수다를 떤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공허한 은유'들은 계속된다. 클링턴은 빈 라덴의 죽음으로 더욱 안전해질 미국과 세계를 천명한다. 변한 것은 이미지를 다루는 권력이 빈 라덴의 시체를 증명하기보다는 안 보여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확실히 불확실한 시대에 ‘떠도는 공포’를 동반한 새로운 전쟁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오늘날 <타인의 고통>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디서 제한되고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을 다시 꺼내 들고 다르게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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