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국의 지형학 | 문강형준·자음과 모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22146345&code=960205
한 해 끄트머리에 켜진 주마등을 들여다본다. 여기저기 지진이 일어나고 핵구름 방향이나 쳐다보던 가운데 그치지 않던 비는 종말이 성경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왔노라 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는 SNS와 새로운 소통매체들을 통해 대중으로 하여금 새로운 저항 형식을 이끌어내고 이 와중에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어떤 시작에 관한 강력한 상상을 하나 더 추가시킨다.
이런 격변 속에서 냉소와 회의주의를 걷어내고 뒤집힌 곳에서 뒤집어 읽기를 보여주는 영민하면서도 따스한 책이 있다. “사회적 조건이 위기에 직면한 듯 보이는 파국의 상황은 유토피아의 사건들에 주목할 가장 좋은 시간.” 동시대의 문학과 영화, 대중매체와 철학, 신화, 노래 가사 등을 통해 지도를 그려준다. “쉽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결코 혁명적 계기로 자동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공허한 혁명 놀이 간판을 세우는 대신 ‘나꼼수’ 현상과 ‘잉여세대’의 저항은 어떻게 지속가능할지 질문하게 된다. 저자는 ‘과잉의 몸짓’에서 허무를 깨트리는 힘을 찾고 ‘최후의 인간’을 새롭게 전유한다. 유토피아를 향하는 ‘비동시성과 과잉성’이라는 ‘시대착오적 성격’에 초점을 주면서 새로운 좀비의 등장을 환대한다. 소외된 노동이 만들어낸 노예성은 이제 주인마저 잃고 소비의 노예화 과정에서 ‘자기계발’의 노예가 되었다. 소위 신자유주의가 떠받치는 ‘자유로운 개인’. 이때 저자는 좀비가 자신마저 먹어치우고 소진하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마저 소진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경쟁과 욕망을 정당화시켜나간 글로벌 자유주의의 패턴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사건’으로서, 감히 다시 사랑으로서의 삶의 충돌을 지시한다.
한 해의 끝이다. 또 어떤 우리는 벼랑 끝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소진할 열정을 품고 비상하거나 추락할 것이다. 해피 뉴 이어 대신 똑바로 쳐다보며 외친다. 슬픔이여 안녕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