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현실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영화와 미술의 만남

임민욱 (미술가)

최근 들어 미술계의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영화관처럼 편안한 의자와 음향 시스템, 그리고 빛까지 완전히 차단되도록 요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기존의 전시 필수 조건처럼 요구되던 화이트 박스는 블랙박스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파렛트와 튜브물감을 들고 들판으로 나서던 인상파에서부터 사진기,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백남준에 이르러 'TV쌓기'까지 매체와 태도의 변화를 거쳐 오면서 동시대 미술은 아예 그 모든 경계와 쟝르를 전유해 버린다. 그들을 통칭하기에 아직도 어설픈 영상 설치 미술가란 호칭은 이러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영화를 잘게 썰거나 늘여서 보여주기도 하고 화면을 허공에 띄우거나 구멍을 뚫고 아예 일종의 영화관처럼 디자인해 버린다. 영화 속의 신체와 시간의 관계를 재질문하고 공간은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유와 개입은 비디오의 일반화로 부터 가능했고 이제 HD 기술은 안방, 영화관, 미술관에서까지 전면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점은 비디오 아트 작가이던 패션사진작가이던 영화감독까지 모두 같은 카메라를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방 안에서 파이널 컷 프로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편집한다.

그러나 이렇게 확장된 접근성이 자유와 표현의 의지를 고무시키는 반면, 영화는 점점 자본의 구속과 영향력에서 산업에 속하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비디오 아트는 결정적으로 제작자의 압력에 작품의 내용이 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돈이 안된다고 시 쓰는 것을 중단하지 않듯이 말이다.

영화를 하고 싶은 미술은 그렇다고 미술계에서 이해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난 미술은 영화계로부터도 미술계로 부터도 이중 비난을 받는다. '영화는 이래야한다' 는 대중에게는 아직 미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은 이래야한다'라고 학습 받지 않은 대중은 이 새로운 방식을 훨씬 편하게 느끼고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 단편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이 방식은 '예술보다 더 재미난 삶으로서의 예술'인 것이다. 그래도 제작비는 필요하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들고 뛰기는 미술가도 마찬가지지만 3분의 내용을 위한 30분의 엔딩 크레딧을 올리지 않는다. 영화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본과 권력의 산업으로 흡수됐지만 비디오 아트는 사람이 다시 주체가 되고, 보고, 느끼고, 안고 가는 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이 영화를 만난 미술이다. 자율과 독자성을 회복한 이 만남은 '미학의 미래'이다. 영화가 예술에서의 그 긴장감을 잃는다면 소위 말하는 작품성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해야 하는 걸까? '상상 그 이상의 도전'이 예술을 떠난 자본만의 문제일 수 있는가. 내게 영화는 경계에 서있지 않은 적이 없고 다시 인간적인 스케일로 자본의 시녀 되기를 집어치우고 현실적 스케일로 돌아오고 있다. 그것이 영화를 만난 미술이 찾고 있는 소통과 해법이다. 적어도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영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 시나리오는 현실과 허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삶의 리듬을 통해 생성된다. 하나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부인되고 현실의 구체성과 달리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안전한 본질을 꿰맨다.

영화를 만난 미술이 다시 전통적 영화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콤플렉스로 부터 자유로워졌고 영화의 텃세에 문제점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미술은 허구의 텃세에 주눅 들지 않고 위장과 침투를 통한 매체와 형식의 관계를 재발명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현실 속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이른바 가장 인간적인 스케일이란 '피할 수 없는 패배'를 직면하게 하고, 창작이란 그 운명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동기를 찾는 일이다. 영화, 다름 아닌 '욕망이란 이름의 또 다른 전차'는 '난 너와 달라'가 아니라 '너의 현실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을 통해 재미 지상주의로 가는 모노레일을 탈피하고 영화관의 일시적 공동체를 확장시키고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Still images from The Weight of Hands
13’ 50”, HD video & sound, single-channel projection, 2010

중앙대학교 영상학회 발표 원고 - 2011년 7월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