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욱, S.O.S. - Adoptive Dissensus

김장언,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작가는 관객들을 여의도 한강 선착장으로 초대한다. 초현실적인 컴퓨터 그래픽으로 선전되는 한강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은 공사판이었고, 가로등도 켜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어둠을 지나 선착장으로 향했고, 유람선은 정각 밤 9시에 선착장을 떠났다. ‘유람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낭만적 어감은 퍼포먼스의 내용을 떠나서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배가 떠나자마자, 우리는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민욱의 [S.O.S. - Adoptive Dissensus]은 한강을 배경으로 유람선과 한강 변에서 진행된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유람선 내부의 선상쇼와 같은 것은 잊도록 하자. 작가는 기존의 유람선과 그 정기 항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유람선에 초대된 관객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를 설명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한강을 중심으로 표상된 혹은 표상되고 있는 서울 그리고 한국의 욕망을 한강과 서울이라는 살아있는 스크린에 투영시킨 거대한 영화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배가 출항하면, 유람선의 선장은 자신의 삶과 한강의 이야기를 처량하게 이야기한다. 이름 모를 대포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삶에 대해 회환에 잠겨 이야기하듯이 그는 자신과 한강에 대한 그리고 서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곳에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대한 기억들이 자리잡는다. 우리가 이러한 회고적 감상에 사로 잡힐 쯤, 작가는 우리를 3개의 사건으로 인도한다.

새마을 운동의 신자유주의적 버전인듯한 뉴타운 사업에 의해서 삶의 기반이 벼랑 끝에 내몰린 일군의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손에는 거울이 쥐어져 있으며, 그들이 절규하는 삶에 대한 목소리는 그들을 감시하는 듯한 서치라이트를 반사하며 우리에게 되돌아 온다.

그리고 유람선은 무모할 정도로 바보 같은 연인들의 사랑의 도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들은 노들섬에서 자신들만의 낭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들은 하이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포스트 모던한 형식으로 재편되고 있는 도시의 통제와 감시 시스템에 대해서 (낭만적으로) 비판한다. 서울의 새로운 부가가치와 삶의 질과 쾌적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은 현재 ‘디자인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할 서울은 이들에게 익명의 공간마저도 유연한 기술과 과학에 의해서 균질하게 통제, 조절되는 유비쿼터스 서울로 비춰진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에서 그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눠야 할지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보호관찰대상자의 독백의 현장으로 이동된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기리는 절두산 성지 아래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제한해 버렸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일상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아니오’를 말하게 될 때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는 비전향자이다.

이러한 사건의 연속된 시퀀스들 속에서 작가는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미확인 욕망 덩어리를 서치라이트를 통해 파편적으로 비춘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잠긴 도시를 배경으로 황량한 교각과 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그리고 누군가의 아파트를 보게 된다. 한강은 순간 림보의 공간이 되고, 그 중간지대를 항해하는 우리는 치열한 3개의 삶의 현장과 서울이라는 거대한 근대적 욕망의 환경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구조신호를 보낸다. 그 구조신호가 외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내부를 향한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그리고 유람선은 자신이 떠났던 그 선착장으로 되돌아 오면서, 마지막으로 한강 르네상스를 위해서 공사판으로 변해 버린 한강시민공원을 다시금 비춘다. 작가는 선장은 한강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삶의 의미가 어떠한 미사어구와 장식으로 치장된다고 할지라도 피폐한 공사장일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관객 스스로이다.

임민욱의 이번 프로젝트는 “뉴타운 고스트”에서 “잘못된 질문” 그리고 “스무고개”에 이르는 그의 한국 산업화와 근대화에 대한 성찰을 마무리하는 종합편인 것 같다. 그는 지난 근 오년간 한국 사회의 사회 문화적 조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해 왔다.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근대적 욕망은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그 기적은 다른 불화를 우리에게 야기했으며, 우리는 그 기적을 우리의 불화를 치유하기 위한 자양분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전지구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개발의 논리를 만들어 냈고, 이제 지난 날의 불화는 해결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사회 전반에 잠재적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임민욱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현상을 절규하는 소녀를 통해서(뉴타운 고스트), 택시 운전사의 넋두리를 통해서(잘못된 질문), 침묵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풍경(스무고개)을 통해서 가시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연구는 우리가 딛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풍경으로 통합되었다. 작가는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낸 그 곳에서 정기 항로를 운행하는 한강 유람선을 이용했을 뿐이다. 유람선의 운행 중에 선장은 멜랑콜리한 음악에 맞춰 좀 넉두리를 했을 뿐이며, 때때로 조명을 서울에 비추었을 뿐이다. 그리고 정기 항로의 풍경 속에서 몇 가지의 퍼로먼스를 한강변에 작동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를 유람선 안의 관(람/광)객3에게 실재의 시공간으로 생방송 했을 분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잔인한 것은 이 프로젝트의 무대인 한강은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고요한 침묵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강요한다. 정말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미 주어져 있거나 아니면 해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아트인컬처 2009년 6월호와 normal type(www.normaltype.net)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