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미디어아트코리아 어워드 수상작가 임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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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가 무엇인지 마음껏 탐구해보라고 주어진 책임”
미디어 아트를 비롯해 퍼포먼스와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현대사회의 속도와 기억에 관해 탐구해온 임민욱 설치작가. 그가 최근 한국의 유망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된 제1회 미디어아트코리아 어워드 상을 수상했다. 사업가 정병기(62)씨가 사재(私財)를 털어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를 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제정한 이 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돼 어깨가 무겁다는 임민욱 작가를 지난 11월27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을지로의 허름한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은 마치 라푼젤의 성(城) 같다. 꼬불꼬불 계단을 올라 복도를 굽이굽이 돌면 맨 꼭대기 층 외딴 곳에 숨어있는 작업실이 나타난다. 여느 작가의 작업실처럼 물감이나 캔버스 등의 재료 대신 책상과 컴퓨터와 책장이 달랑 놓여있는 단출한 살림살이의 작업실이다.
“집에서는 마냥 늘어지니까 긴장감을 갖기 위해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작가와 작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았다.
먼저 미디어아트코리아 어워드를 수상한 소감부터 물었다. 상금은 500만원으로 큰 금액은 아니지만 수상자의 작품세계를 알릴 수 있는 아티스트 북을 제작해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기관과 평론가들에게 두루 배포하고, 수상자의 작품 중 하나를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미술관에 기증한다. 지금까지 이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작가의 작품은 백남준의 작품이 유일하다. 또 수상자가 원하는 나라로 해외 문화 탐방의 기회도 제공한다.
“좋아하는 분들과 나란히 후보에 올랐을 때도 기뻤는데 상을 받게 돼 더 기뻤다. 요즘 주변 분들에게 ‘상복 많은 작가’라는 말을 듣는다. 상을 받으러 가보니까 그 상을 만드신 분과 심사위원들의 열정이 작가들의 열정 못지않게 뜨거워서 감동을 받았다. 그분들의 열정을 보면서 이 상이 보통 상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상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크다는 걸 알고 숙연해졌다.”
우리나라의 미디어아트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니만큼 바로 아티스트 북을 제작하게 된다. 이 아티스트 북에는 수상자의 작품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게 된다. 아티스트 북 제작을 앞두고 어떤 작업들을 실어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는 작가는 특히 미디어아트에 대한 거대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아트선재센터의 첫 개인전 때 만들었던 도록이 화보 위주의 도록이었다면 이번에는 미디어아트가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 정리랄까, 담론차원에서 읽을 수 있는 도록을 만들고 싶다. 고민이 있다면 임민욱이라는 작가의 10년 동안의 모든 작업을 보여줄 것인가, 혹은 미디어아트에만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미디어아트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을까?
“내가 미디어아트에 관한 상의 수상후보가 됐다는 것에 사실 놀랐다. 그만큼 미디어아트의 정의가 넓다는 걸 알았다고 할까.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아트는 하나의 입장표명이다. 내 작업은 인간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되는데 나는 인간 자체가 미디어라고 파악하고 작업하고 있다. 보통 미디어 아트하면 하이테크놀로지 매체를 사용하는 작품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람 자체가 미디어라고 판단하고 내가 보고 해석하고 관찰한 것을 다시 제안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아트의 잠재된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는 작가는 이번 미디어아트코리아 어워드 상을 수상한 이유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아트에 관한 가능성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수상 기념 아티스트 북은 ‘이것이 미디어아트일지도 모르겠다.’는 질문과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혹은 ‘미디어아트가 이런 것은 아닐까 같이 생각해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임민욱의 힘
임민욱 작가의 시선은 사람과 기억을 향해 있다. 그것도 근대화나 세계화의 속도전에서 이탈한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기억이다. 집단적으로 잊어가고 있는 기억들을 들춰 망각하고 있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2005년 서울 영등포 로터리 인근의 재개발 지역에서 진행한 비디오 설치작업인 ‘뉴타운고스트’ 나 재개발 지역을 산책하는 사람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풍경을 보여주는 ‘포터블 키퍼’, 서울 서대문구 연신내 연서시장 옥상에 라텍스를 올려 놓은 뒤 6개월간 비바람을 맞힌 다음 이 조각들을 모은 ‘꼬리와 뿔’, 관람객들을 초대해 한강 유람선에 태운 뒤 한강을 관람하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SOS-Adoptive Dissensus’, 폐쇄된 선착장이나 유령 아파트 등을 촬영한 ‘손의 무게’ 등은 모두 곧 사라져버릴 풍경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 중 작가가 특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업은 ‘뉴타운고스트’와 ‘SOS-Adoptive Dissensus’, ‘손의 무게’ 등이다. 특히 ‘손의 무게’는 작가 자신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손의 무게’는 편집은 약간 마음에 안 들지만 내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 작품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 따스함에 대한 갈망 이런 것들이 담겨 있다. 비디오 작업은 차가운 건데도 터치나 온도 이런 것들을 비디오로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탐색하고 있는 중이라 더 각별하다.”
사회성이 짙은 작업들이라 간혹 시민운동가가 아니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에게는 작가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걸 얘기해주고, 작가나 관람객들에게는 저항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맛보기 식으로라도 얘기해주고 싶다. 다만 거기까지라는 게 내 한계고 슬픔이다.”
스스로 작가도 시인도 학자도 기자도 시민운동가도 아니라는 근원적 슬픔을 가지고 있는 그는 스스로 예술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의도적으로 감춘다. 의식적으로라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이기를 바란다.
“스스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아우라를 풍기기보다는 사람들 틈에 섞여 보고 듣고 읽고 싶다. 그래서 아줌마와 이야기할 때는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와 이야기하면 할머니가 된다. 나를 표방하기보다 항상 상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는 눈물도 많다.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한다.
“내 딸을 학교에 잘 보내는 것보다 1달러 벌려고 하루 종일 일하는 인도 아이들 눈에 밟힌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화면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고 아이티에서 콜레라 걸려 죽어가는 아이들 사진 보면 또 눈물이 난다.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구나, 연민이 많구나, 예전엔 그게 또다른 억압이 될까 숨겼는데 이젠 예술로 승화하기에 앞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애도하고 내 작업으로 표현한다.”
작업을 하면서 생각들이 명료해질 때 신나고 행복하다. 그것이 쉽지 않은 작업인 미디어아트를 계속하는 이유다.
“내가 이런 걸 원했었구나, 하면서 알아질 때, 하나씩 그림이 만들어질 때, 신나고 즐겁다. 그런 과정이 신나니까 퍼포먼스나 비디오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인간이 학습되고 훈육되면서 잃어버린 원시성에 대한 이야기다. 거세된 원시성을 다시 오늘에 드러낼 수 있는 작업들을 구상하고 있다. 백남준 선생처럼 호탕하게는 아니고 슬픈 느낌이 될 것 같다.”
글 ‧ 사진=유은정 객원기자(프리랜서) eunjung@artmuseums.kr
<임민욱 프로필>
1968년 대전 生. 1985~1988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재학 중 도불(渡佛). 1994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 DNSAP 펠리치타옹 졸업. 1995년 파리 제1대학 조형예술학과 졸업. 2006년 제6회 광주비엔날레 광주은행상 수상. 2007년 제7회 에르메스미술상 수상. 2010년 제1회 미디어아트코리아 어워드 수상. 2008년 점프컷(아트선재센터)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