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gone
2015
FRP mannequin, faux fur, steel, reflector, buoy
220 x 228 x 125 cm
Photograph: Sang Tae Kim

임민욱-흩어진 공동체의 초상
인터뷰 박정원 편집장

“내가 어떻게 잊고 있는지 지켜보세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었는지 지켜보세요. 나는 이제 조국을 갖고 싶지 않아요. 나는 죽을 때까지 내 아이들에게 악의와 무관심, 다른 사람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가르칠 거예요.”
마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중 에서

광화문 한 복판에서 1983년에 KBS가 주관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 방송이 〈만일(萬一)의 약속〉이란 새 이름을 걸고 상영되고 있다. 그리움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미디어에 자신을 스스럼없이 내맡기는 그들의 얼굴은 확대되고 느리게 재생됨으로써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을 갖는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기에 가능한 이 영상은 현재 유네스코에 인류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임민욱 작가의 《만일의 약속》(2015.12.3~2016.2.14)에서 우리, 그리고 미술이 하는 어떤 것에 대하여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본 기사는 12월 9일에 진행된 필자와의 인터뷰와 12월 15일에 열린 정림건축문화재단 재난포럼의 임민욱 작가의 재난포럼 〈실종과 이산〉이 바탕이 되었다. 본 인터뷰는 《만일의 약속》 전시의 동선대로 질문을 구성하여 진행되었다.

# 분단
이번 전시 《만일의 약속》의 모티프가 되는 작품이 1983년 방영된 ‘KBS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분단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저는 분단에 대한 관심보다 급속한 근대화에 의해 사라진 장소들, 흩어진 공동체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근대화가 급격하게 변화시킨 그런 시간감과 공간감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작가로서 피할 길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가족, 친척 등 가까운 분들을 통해 접하게 된 이야기 속에서 전쟁, 분단에 의해 시작된 좀 더 근원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분단이라기보다는 가족과 사회적 정치적 갈등에서 오는 이분법적 사고, 진영논리 이런 거에 대해 정말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제게 이른바 좋은 교육을 시켜주었고 그래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려고 하면 그 능력은 막상 이념에 관해서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 치도 뚫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것이 낳은 갈등 속에서 생각할 겨를 없이 빨리 빨리 이뤄낼 수 있었던 근대화가 사유마저 반토막 내버린 것에 분단을 지목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만일의 약속’이란 전시 제목 역시 이중성을 담고 있어서인지, 전시를 다 본 후에 의미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주제와 관련된 단서들이 곳곳에 흩어져있는 느낌이었어요. 현재 분단의 상황처럼 파편화된 초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작업이 어떤 주제를 일러스트하고 변주하는 방식이라면 의미가 하나로 모이는 것처럼 볼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작가의 스타일이 될 수도 있겠고, 저는 그것을 대중매체의 소통 방식처럼 정보 수용 관계에 관객을 놓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번 전시 공간 속에서 작품이 흩어진 초상으로 다가 온다면 걷다가, 운전하다가, 또 꿈 속에서 마주쳤던 개인적 경험의 장면들이 온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라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양상이 서로에게 잊혀져있던 감각의 경험과 맞닥트려지는 시간이면 더 좋겠습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작품들이 다큐적 결과물도 아닐뿐더러 “자 이제 과거는 다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식의 대안을 만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좋고 나쁘다는 판단 이전에 섞여 있고 가려져 있고 막혀 있는 것들을 들추어내고 다시 한 번 가리켜보는 정도까지 입니다. 사실 모든 본질은 혼재되어 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생각하는 것 까지 닿는데도 지난한 길이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파편화된 초상은 제가 지향하는 유일한 사실주의적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컨테이너
플라토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에 보이는 것이 컨테이너로 제작된 작품 〈시민의 문〉입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개막작, 〈내비게이션 아이디〉에서는 경산과 진주의 민간인 학살 유해가 담긴 컨테이너를 광주로 옮겨왔었습니다. 컨테이너가 죽음이라는 개념과 접목되면서 점점 더 거대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컨테이너’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이번 전시 《만일의 약속》은 ‘실종’과 ‘이산’ 사이에 있습니다. 지난 작업들을 돌아보아도 결국 실종과 이산 사이에서, 계속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통해 개인성과 공동체의 범주들을 질문하고 발굴하려 했던 것 같아요. 2008년의 〈점프컷〉, 2005년의 〈뉴타운 고스트〉, 2004년의 〈LOST?〉등의 작업을 하면서 (시대감과 관련된)속도와 기억의 관계, 급속한 근대화로 인해 누락된 존재들, 실종되고 결여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도연맹을 리서치하면서 진실과화해위원회의 기록들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경산과 진주의 컨테이너들을 또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흩어진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여정에서 모두 컨테이너를 목격하게 되었고 근대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실종과 죽음 사이의 시차 위에 위치하게 된거죠. 언제, 누가 실종이라 부르고 언제, 어떻게 사망신고를 하게 되는지 까지 질문이 옮겨갔습니다. 국가란 무엇인지, 이게 국가인지... 그런데 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자마자 고삐 풀린 컨테이너가 배를 전복시키는 걸 보게 됐죠. 그리고 시신을 인양해서 또 컨테이너에 안치하고 분향소도, 유가족이 머무르는 공간도, 모두 컨테이너인 것을 보면서 그것이 왜 당연한지 물었던 겁니다. 그리고 작년 〈내비게이션 아이디〉에서 경산과 진주에 방치되 있는 컨테이너를 광주로 이동했습니다.
근대화를 대표하는 혁신적인 산물, 컨테이너와 그 속에 들어있던 발굴된 유해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연스러운 귀결이 될 수 있었던 걸까요.

〈시민의 문〉에서 이어진 ‘A 갤러리’로 들어가는 원형통로 역시 컨테이너로 제작했는데요. 이 컨테이너 통로를 〈동굴〉이라고 이름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시민의 문〉에서 사라진 벽을 떼어 ‘A 갤러리’에 마치 양 날개를 이루듯이 둥글게 감싼 형태로 만들었어요. ‘동굴’이란 제목으로 예전의 작업들을 묻어두고 있는 일종의 무덤을 만든거지요. -〈포터블 키퍼〉, 〈롤링 스톡〉, 〈뉴 타운 고스트〉, 〈포터블 키퍼〉, 〈S.O.S-채택된 불일치〉, 〈손의 무게〉, 〈불의 절벽 3〉, 〈영도의 염원〉,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 〈절반의 가능성〉, 〈이별〉- 이 작업들과 함께 최근 완성한 작업 〈통일등고선〉, 〈마디〉, 〈옥상〉, 〈뉴 타운-점선면〉등을 동굴 속에 남긴 사냥꾼의 그림처럼 보면 되는거죠.

문경에 살고 계신 채의진 선생은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생존한 분이예요. 그때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 악몽 같았던 순간들은 유가족들의 가슴에 구멍을 낸 채 거기에서 아직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과거가 청산된 게 아니니까요. 진주와 경산 유가족들이 유해가 버려져 있는 컨테이너 속에서 하루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와도 같지요. 그 상처이자 구멍은 제가 쫓아다니던 근대화란 시간에 결여된 그 구멍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굴들은 다시 컨테이너와 중첩됐어요. 우리의 모든 일상은 사실 컨테이너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데 거기에 죽음이 오버랩 되어 있는 거죠. 이 상황에서 컨테이너는 유해를 모셔놓은 동굴과 같은 것으로 연결됐습니다.

# 미디어
또 다른 공간에 들어서면, 〈이산가족찾기-1983 KBS 생방송〉과 이 생방송을 편집한 영상 작품 〈만일의 약속〉을 볼 수 있는데요. 미디어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2~2013년 슬럼프에 빠졌어요. 그런데 보도연맹 관련 유해 발굴지와 증언자들을 보면서 개인적 연관성과 더불어 “이것이 국가란 말인가”에 대한 질문에 더 세게 엮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은 나무에 물 붓기 같은 뉴스룸 형식을 띤 작업들이 나왔고 반은 사람이자 반은 자연인 오브제 작업들이 이어졌지요. 그러면서 질문은 근대화에 뿌리박은 이분법적 사유가 분단국가의 미디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로 번져갔어요. 그 때 분리가 아니라 만남의 장이었던 방송국을 떠올리게 된 거죠.

이산가족들이 점령한 방송국, 그 강렬했던 순간들은 감성을 다르게 배치했던 미디어의 역사적 사건이었어요. 그러나 그 방송은 시간이 흐르고 시스템을 찾아가면서 다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현장으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리서치를 하다가 마침〈KBS 이산가족찾기-1983 생방송〉을 인류 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재현하는 현장을 보게 되었어요. 역사를 재현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었던 거지요. 마네킹들을 사용한 상황 재현과 사연판 복사 설치, 그리고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와 닮은 분장을 한 아나운서의 연기모습 등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그 때 촬영한 것을 전시장에서 짧게 보실 수 있었던 겁니다.

〈만일의 약속〉은 이 흩어진 공동체가 점령한 방송국 현장이길 바라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일종의 회전축으로 바라보고 편집한 거예요. 〈만일의 약속〉이 실황이라면 이것을 중심으로 계속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아주려는 상상의 방송국이 있고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연결하는 거죠. 시간을 뛰어넘는 감각의 미디어를 상상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슬픔의 끝에서 작업을 통해 다른 흐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이 저의 미디어에 대한 생각입니다.

# 미술
마지막 공간에 중계 현장을 준비하는 숨은 방송국 격인 〈허공으로의 질주〉 설치 작품이 펼쳐지는데요. 깃털, 괴목, 부표, 우뭇가사리, 인조털, 소라 껍데기, 그물 등의 재료로 제작된 형상들로부터 연약함과 동시에 강한 주체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근대화의 동굴을 생각하면서 계(界)가 완전히 뒤집혀진 장면을 상상해 봤어요. 그 계를 바꾼 미디어의 현장이 〈허공으로의 질주〉인거죠. 저는 많은 자료에 의존하면서도 그것을 전시장의 맥락으로 들여올 때는 물성화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이브(naive)하고 원시미술에 가깝고 즉흥적이고 감각적이고 충동적인 것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따르기도 하니까요. 〈허공의 질주〉 역시 그런 맥락에서 만들었고 그래서 개별 작품은 만들어 놓고 이름을 지어줬어요. 제가 감동받았던 작업들은 아주 연약한 재료들인데 순간을 포착하고 있고 어떤 일시적 존재들을 형상화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 자체가 바로 감정과 연결되나 봐요. 우리가 몫 없는 존재들을 드러내기 위해 시선을 던지고 물성화 시키는 작업들은 어떻게 보면 퇴행한 제스처일 수 있어요. 하지만 보살핌과 같은 어떤 행위와 시선 속에서 좀 더 본질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배제하는 것에 주목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보면 내 가족도 아닌데 흐르는 눈물에서 어떤 유대감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때의 미디어는 어떤 증오, 배신, 상실감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그리움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준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치를 수 없는 장례를 치르고자 신의 법(인륜)이 인간이 정한 법(국가법)에 우선한다며 왕의 명력을 거역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많이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허공으로의 질주〉 오브제 작품 중 하나로 만들기도 했구요. 제가 재료를 다루는 방식을 애니미즘적 상상력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 어떤 아이와 같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감각들을 대하는 능력들로 보면 좋겠습니다. 진영논리나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게 되면 어떤 대상을 욕망으로만 바라보게 되지 어떤 변화의 주체로서는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오브제들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밤마다 애니메이트되고 있을 거라 믿어요.

전시장에 구현되는 불편한 진실들에 직면하게 되는데요. 전시 공간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시장은 안락한 소파가 있는 살롱이 아니예요. 그 소파에서 튼튼한 재료로 안전하게 걸어놓은 액자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시라는 행위는 퍼포먼스와 같이 대면하는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 관계가 불러 세운 우리의 시선이 끊임없이 재고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오브제와 아카이브가 ‘본다’라는 행위를 몸으로 구(求)한다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볼 수 없으니까 미술 공간은 그것을 움직임과 연결시키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아까 ‘따뜻한 비관’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이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이게 설령 허튼 짓일지는 몰라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붙잡고 자르고 따로 또 붙여보고 섞어보는 행위를 합니다. 숭고하다고 여기는 로뎅의 조각과 〈시민의 문>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대중적인 노래가 그 공간을 가득 메우면서 발생하는 잠재적 퍼포먼스, 그런 관계들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전시의 시작 지점에 있는 〈시민의 문〉이 통일과 화합의 염원을 상징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시의 끝에 다시 마주하는 〈시민의 문〉은 어쩌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간과 그 시간을 다르게 볼 줄 아는 태도를 제안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영화음악부터 대중가요까지 선곡한 음악들이 〈시민의 문〉에서 흘러나오는데요. 그 노래들 사이에는 유해가 든 컨테이너를 옮겼던 트레일러 기사님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어요. 화물수송을 하는 일상 속에서 자기 동료와 피곤함을 극복하고 잠을 이기려고 나눈 대화를 엿들을 수 있지요. 이 사운드 설치는 미술관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브제를 만들고 설치를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게 기도문이 되고 결국은 설치미술이 살아있는 현장처럼 느껴지면 좋겠어요. 공간 속에서 설치미술이 무대미술처럼 스토리텔링을 하는 공동의 극장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환영 속에서 역설적 합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지점에서 미술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